여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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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인물
백제의 제21대 개로왕의 사위로, 고구려의 압력에 대항하기 위하여 북위에 파견되어 군사원조를 요청한 왕족.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관군장군부마도위불사후장사(冠軍將軍駙馬都尉弗斯候長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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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백제의 제21대 개로왕의 사위로, 고구려의 압력에 대항하기 위하여 북위에 파견되어 군사원조를 요청한 왕족.
내용

당시의 관위는 관군장군부마도위불사후장사(冠軍將軍駙馬都尉弗斯侯長史)였다. 부마도위라는 관직은 공주와 혼인한 사람에게 주어진 직이다. 따라서 부마도위인 여례는 왕족으로서 개로왕의 사위가 되었음을 뜻하는데, 이는 백제 왕실의 유일한 근친혼 사례이다.

그리고 ‘불사후’의 불사는 전주지역으로 비정되고 있으므로 불사후라는 관직을 가진 그는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지역에 후(侯)로 분봉(分封)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개로왕은 남진의 압력을 계속 가하고 있는 강대한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하여, 북위(北魏)에 군사원조를 요청하는 외교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이 때 이 외교적 임무를 맡은 사람이 여례였다.

그는 472년(개로왕 18) 한인계(漢人系) 백제인인 용양장군대방태수사마(龍驤將軍帶方太守司馬) 장무(張茂)와 더불어 북위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당시 북위는 백제의 여러가지 충동에도 불구하고 강대한 고구려와의 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꺼려하여, 백제의 요청을 거절하였다. 따라서 여례의 임무도 실패로 돌아가고, 아울러 백제와 북위와의 외교관계도 단절되고 말았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史記)』
『위서(魏書)』
「한성말(漢城末) 웅진시대(熊津時代) 백제왕위계승(百濟王位繼承)과 왕권(王權)의 성격(性格)」(이도학, 『한국사연구(韓國史硏究)』50·51,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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