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사군육진(四郡六鎭)을 개척할 때 4군 중의 하나로 설치되었던 군이다. 이 지역은 본래 함길도(咸吉道) 갑산군(甲山郡)의 여연촌(閭延村)이었다.
1416년(태종 16)갑산군의 소훈두(小薰豆) 서쪽을 떼어 여연촌을 중심으로 여연군을 설치하였으며 평안도의 관할로 하였다. 1435년(세종 17) 도호부로 승격시켜 진(鎭)을 설치하고 첨절제사를 두었다.
그 뒤 여진족의 침입이 잦아 4군을 폐지하게 되자 1455년(세조 1) 이 지역을 비워 강계부에 속하게 하고 주민은 구성부로 옮겨 살게 하였다. 1731년(영조 7)후주(厚州)가 설치되면서 이 지역은 후주에 속하게 되었다.
소훈두는 압록강의 지류인 죽전천(竹田川)이 합류하는 지점이며, 여연은 이 강의 서쪽에 있는 금동천(金同川)과의 중간 지점에 있었다. 조선 말기에 죽전 지역에는 만호가 주둔하였다. 지금의 중강면 지역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