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처는 학원사(學園社)였으며, 발행인은 김익달(金益達)이었다. 창간 무렵에는 A5판 250면 내외였는데, 1956년 6월 당시 학원사 부사장이던 김명엽(金命燁)이 독립하여 여원사(女苑社)를 창립, 계속 발간하였다. 광복 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등장한 여성종합지라는 점에서 잡지계와 여성들의 교양을 높이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1967년 판형을 B5판으로 변형하여 교양 · 오락 · 생활정보 · 독자수기 등 다양한 내용으로 꾸며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전반에 걸쳐 신태양사에서 발행하던 『여상(女像)』과 함께 우리나라 여성교양지로 크게 각광을 받았으며, 직업여성 · 여대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정기적인 요리 · 꽃꽂이 강습을 개최하는 등 부대사업도 활발히 하였고, 내용도 본격적인 상업지로서의 체재를 갖춘 여성잡지였다. 그러나 그 뒤로 창간된 『주부생활』 · 『여성동아』 · 『여성중앙』 등과의 치열한 판매경쟁 끝에 경영난을 겪으면서 1970년 4월호로 통권 175호를 내고 폐간되었다.
1971년 12월 《신여원》(新女苑)이라는 제호로 재창간했다. 1974년 7월에는 제호를 다시 《여원》(女苑)으로 바꿨다. 《여원》은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에 이르는 여성들을 주요 독자층으로 삼아 1978년 9월호부터 여성들의 취미 · 교양 · 생활 ·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백과사전 형식의 내용을 담았다.
1990년대에 들어 여원사는 판매 부진과 무리한 투자로 말미암아 부도를 맞게 된다. 마침내 《여원》은 1995년 4월호를 끝으로 종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