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사정(司正)이라 하였으나, 1462년(세조 8)에 여정으로 개칭된 것이다. 이는 평양부의 진서위(鎭西衛)에 3인, 영흥부의 진북위(鎭北衛)에 2인, 영변대도호부의 진변위(鎭邊衛)에 2인, 경성도호부(鏡城都護府)의 진봉위(鎭封衛)에 2인, 의주목의 진강위(鎭江衛)에 1인, 회령·경원의 회원위(懷遠衛)에 1인, 종성·온성·부령·경흥의 유원위(柔遠衛)에 1인, 강계도호부의 진포위(鎭浦衛)에 1인이 각각 설치되어 있었다.
이들 토관직은 고려 공민왕 때부터 평양 등지에 설치되기 시작한 것으로 조선 초기 양계지방의 방위조직을 강화하면서 각지에 확대, 설치되었다. 이들의 임명은 관찰사와 병마절도사가 추천하여 대간(臺諫)의 서경(署經)을 거친 뒤에 이루어졌다.
이들은 다른 지방의 향리와 비슷하게 인식되기도 하였으나 그 지역에서는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이 문무관 정직(正職)을 받을 때에는 1품계 강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