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필사본. 규장각 도서에 있다.
1637년(인조 15)부터 1727년(영조 3)까지 관련 중앙관서 및 각 지방의 감영과 주고받은 각종 공문서가 연대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중에는 왕에게 치제를 건의하는 상소문도 포함되어 있다.
역질의 예방을 위하여 여제를 지내는 경우에는 봄의 청명절, 가을의 7월 보름, 겨울의 10월 초 하루에 거행하는 것이 상례였으나, 역질이 만연되고 있을 경우에는 지방별로 그때그때 여제를 거행하였다. 역질로 인한 병사자, 전쟁 또는 반란 때의 전망인·절사인 등에 대한 치제의 경우에도 별도 택일의 절차를 거쳐 제사를 지냈다.
도성 또는 경별여제(京別厲祭)에는 조정 중신이 제사에 참여하였으며, 각 지방의 도별여제에는 관찰사가 제사에 참여하였다. 여제를 지낸 횟수는 대개 1년에 3, 4회였으나 어떤 해에는 1, 2회 지낸 경우도 있고 한 번도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경우도 있다.
또한, 여제를 지낸 기록 외에 약품을 지방에 보낸 기록도 있는데, 1727년 4월 25일 제주도에 역질이 만연하여 구료약물(救療藥物)을 내려 보냈다는 내용이 그 예이다. 여제는 당시로서는 의약에 의한 역질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하에서의 미신적 행사였으나, 한편 치료를 위한 노력도 병행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 책은 조선 중기에 있어서 연도별 또는 각 지방별로 역질이 유행하였던 역사적 사실과 함께 여제에 관한 동기, 행제(行祭)의 풍습, 역질에 대한 조정의 치료노력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