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반도의 동쪽 해안가 구릉지대에 있는 유적으로서 일대에 조성되는 석유화학단지공사계획에 따라 1990년 여름 국립광주박물관에 의해 발굴되었다.
이 곳에는 원래 30여 기에 이르는 고인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조사 당시 남아 있던 덮개돌은 26개였고, 발굴을 통해 드러난 돌널은 모두 32기에 이르렀다.
돌널은 일부 판돌과 깬돌을 섞어 쌓은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 깬돌만으로 쌓아 올린 할석형(割石形)이 주류를 이루었다. 돌널의 가장자리에는 일정한 범위에 걸쳐 둥글거나 네모난 둘레돌이 돌아가고, 그 안쪽으로는 막돌과 넓적한 판돌을 한 두 겹으로 얇게 덮은 돌무지 시설이 이루어져 있었다.
하부구조 가운데에는 돌널이 위아래로 한데 겹쳐 이중으로 이루어진 것들이 있었다. 모두 3기에서 확인된 이들 돌널은 먼저 구덩이를 깊숙이 파내고 바닥에서부터 깬돌을 쌓아 네 벽을 올린 다음 뚜껑돌을 얹고 그 위에 다시 벽석을 쌓은 뒤 뚜껑돌을 씌웠다.
조사된 돌널 중 최소한의 펴묻기[伸展葬]가 가능한 길이 160㎝ 이상의 것은 11기에 불과하다. 나머지 20여 기는 그보다 작으며 70㎝ 미만의 것도 4기나 된다.
출토유물 중 석기류로는 간돌검·돌살촉 등의 무기류, 홈자귀·대팻날·숫돌 등의 이기류(利器類), 갈돌·갈판과 같은 조리구가 있다. 토기로는 구멍무늬토기·붉은간토기·민무늬계 새김무늬토기가 있다. 구멍무늬토기 중에는 아가리에 골이 패인 것도 있다.
월내동 고인돌 문화는 북쪽으로부터 내려온 송국리형(松菊里形) 토기문화의 영향으로 이루어진 바탕 위에 한강을 거쳐 내려온 동북지방의 토기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이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출토유물과 주변 문화의 연대적 성격을 통해볼 때, 이 곳 고인돌의 축조 시기는 대략 서기전 4∼3세기경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