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합천의 해인사(海印寺) 사간판(寺刊板)에 소장되어 있는 판본(板本)으로, 1278년(충렬왕 5)에 간행되었다. 현존하는 판목(板木)은 사간판에 소장된 다른 25종과 더불어 198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전체 판목은 2판뿐이며 앞·뒷면의 4장으로 되어 있다. 전체 내용으로 보아 마지막 부분 2판만이 남아 있는 산일본(散佚本)이다. 각 장의 크기는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1·2·3장은 대체로 54.5×17㎝ 전후이며, 4장은 54×6㎝로 되어 있다.
마지막 4장의 크기가 작은 이유는 앞의 3장까지는 각 장이 3단으로 된 데 비해, 4장은 끝나는 부분으로 1단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서체는 해서(楷書)로서 고졸(古拙)한 편이다. 판본의 끝부분에 ‘至元十五仁興社開板(지원십오인흥사개판)’이라는 간기(刊記)가 있어, 지원 15년(1278)에 인흥사에서 간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판본이 언제 어떤 연유로 해서 해인사로 옮겨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현재 비슬산 북쪽 기슭 곧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면 천내동에 있던 인흥사(仁興寺)가 폐사되면서 인접한 대찰인 해인사로 옮겨진 것이 아닌가 한다.
전체 내용은 중국과 그 주변 민족에 의해 건설된 제국(諸國)의 역대 왕명과 연호를 정리해 수록한 것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신라, 고구려, 백제, 고려의 순서로 왕명과 재위년수를 밝히고, 이어 ‘海東諸國年(號)(해동제국년(호))’라 하여 우리 나라의 연호를 명시한 점이 주목된다.
연호는 신라, 발해(渤海), 마진(摩震) 등의 것과 ‘右八日本國年號(우팔일본국년호)’라 하여 일본의 연호를 명시하고 있다.
이 판본은 일연이 인흥사에 머물 때 조성된 것으로 보아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찬술하기 위한 선행작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으며, 어느 특정 사서(史書)나 연표류에만 의존하여 그대로 옮겼다기보다는 광범위한 자료 수집·섭렵에 의한 산물이었다.
간행을 위한 준비기간은 1274∼1278년간으로 추정되는데, 이 짧은 기간에 자료 수집과 정리 작업, 간행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이 자료가 일연의 독자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인흥사를 중심으로 한 그의 문도들이 대거 동원되었을 가능성과 당시 역사학의 높은 이해수준을 시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