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유교적 이념을 기반으로 한 국가체제의 정비와 관련하여 박사제도를 마련하였다. 특히, 백제는 중국 양(梁)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강례박사(講禮博士)를 초청하는 등 유교적 학문 소양을 넓혀갔다.
그 결과 513년(무녕왕 13)에는 오경박사(五經博士) 단양이(段楊爾)를 왜에 파견하였고, 516년에는 오경박사 고안무(高安茂)를 보내어 단양이와 교대하게 하였다. 오경박사는 『주역』·『시경』·『서경』·『예기』·『춘추』 등 5경의 전문학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553년(성왕 31) 6월 왜의 사신이 백제에 와 역박사 등의 교대 파견을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그 이듬해 2월 백제는 복서(卜筮) 전문가로서 역박사인 시덕(施德) 왕도량(王道良)을 다른 박사들과 함께 파견하여 전임자와 교대하게 하였다. 이때 복서도 함께 전하여졌다.
그런데 왕도량은 성씨로 보아 대방군지역에 거주하다 백제에 흡수된 한인(漢人)의 후예로 생각된다. 이는 중국계 백제인이 유교적 박사제도내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였음을 시사해준다. 어쨌든, 백제의 역박사 파견은 일본의 정신적·물질적 생활문화를 개선, 향상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