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식에서 사용되기도 하였다. 원래 연과 여(輿)는 구별이 있어, 연은 임금이 타는 것으로 밑에 수레를 달아 말이 끌게 되어 있고, 여는 사람이 어깨에 메고 다니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연은 임금이 타는 것이지만 사람이 메기도 하며, 여는 보통사람이 타는 것을 말한다.
고려시대에는 금(金)나라에서 상로(象輅)를 가져왔는데, 이것은 왕이 대묘(大廟)에 제사지내러 갈 때 타던 연이라 한다. 조선시대의 연은 옥개(屋蓋)에 붉은 칠을 하고 주홍과 황금으로 장식하였으며, 둥근 기둥 네 개로 작은 집을 지어 위에 올려놓고, 사방에 붉은 난간을 달아 겉에는 운룡(雲龍)을 그렸으며, 안에는 운봉(雲鳳)을 그렸다. 또한 처마에도 여러 가지 조각으로 장식하였다. 소련(小輦)·대련(大輦)·평련(平輦) 등이 있다.
불교의식에 사용되던 연은 불보살의 연대(蓮臺)를 상징하여 제작된 것이며, 그 형태는 가마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조선시대에 더욱 다양해진 불교의식과 함께 연의 제작 역시 보편화되었다. 연에는 불보살을 모시는 것이 원칙이겠으나, 의식에도 활용되어 재자(齋者)가 직접 이를 타고 불세계에 왕생하는 놀이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형태는 연을 들게 되는 손잡이와 연의 몸체와 옥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손잡이는 앞뒤 두 개씩 네 개이며, 손잡이 부분은 용을 새겨서 장엄하고, 몸체와 옥개 부분에도 칠보 문양과 함께 아름다운 수실을 드리워 장엄의 내실을 다한다.
상고의 유품은 전혀 없고 다만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 및 칠곡 송림사(松林寺)에서 발견된 사리구 형태가 모두 연을 상징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이 모두 사리장엄구이기는 하지만, 신라시대 연의 형태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오늘날 현존하는 연은 거의 조선 후기의 것이며, 또 각부의 장엄 역시 많이 망실되어 완전한 것은 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