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동이전(東夷傳) 고구려조에 처음 나타난다. 『한원(翰苑)』에 인용된 『위략(魏略)』과 『후한서』 고구려전에는 소노부(消奴部)로 되어 있다. 그래서 ‘연(涓)’을 ‘소(消)’의 잘못으로 보고, 소노를 『삼국사기』에 전하는 주몽(朱蒙)과 패권을 다투었다는 비류국(沸流國)의 왕인 송양(松讓)과 같은 실체로 보는 설이 제기되어 왔다.
또한, 소노의 ‘노’를 ‘나(那)’ · ‘내(內)’로도 표기한 것은 ‘내[川]’의 음을 딴 것이고, 양(讓 · 襄 · 壤)으로 표기한 것은 그 뜻을 새긴 것이다. 그 뜻은 모두 냇가[川邊]나 계곡의 집단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송(松)과 소(消)는 그 음이 통하므로, 소노와 송양은 같은 집단을 다르게 표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송양왕은 특정한 인물의 이름이 아니라, 소노의 장이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송양왕의 비류국이란 비류수(沸流水) 상류에 있던 소노부로 이해된다.
한편, ‘연(涓)’을 ‘소(消)’자로 보는 견해에 대하여, 『후한서』가 의거한 『위략』과 『한원』에 인용된 『위략』은 이본(異本) 『위략』으로서 『삼국지』의 편찬에 기본자료가 되었던 원래의 『위략』보다 후대에 와서 옮겨 적은 것이기 때문에 그 사료적 가치가 떨어지므로, 『삼국지』의 기사에 따라 ‘연(涓)’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설도 있다. →고구려오부, 소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