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본.
이 책은 편저자 이긍익의 생존 때부터 전사본(傳寫本)의 수효가 한둘이 아니어서, 특별히 정본이 없이 전해져왔다. 더구나 편저자 자신이 그 범례에서 밝힌 바와 같이, 본문에 여백을 두어 새로운 자료를 발견하는 대로 수시로 기입, 보충하는 방법을 취하였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보충하게 하여 정본을 이룩하도록 희망하였으므로 종래의 전사본 중에는 서로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것도 있다.
또, 편저자 자신의 최후 정본인 원고본 역시 전해지지 않고 있어 그 정본이 어떤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려우나, 현재 가장 권위 있고 정본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되는 것은 두 종류가 있다. 그 하나는 1913년 일본인 주관의 조선고서간행회 인본(印本)의 대본이고, 다른 하나는 1911년최남선(崔南善)이 주관한 광문회(光文會) 인본의 대본이다.
전자는 원집 33권(태조∼현종), 속집 7권(숙종), 별집 19권, 합 59권임에 대하여, 후자는 단지 원집 24권(태조∼인조), 별집 10권, 합 34권뿐이다. 이 책의 찬술연대는 저자의 연보가 구체적으로 전해오지 않아 확실하지는 않으나, 41세 되던 1776년(영조 52) 이전에 일단 완성된 듯하다.
이 책의 첫머리에 그의 아버지 광사(匡師)가 책이름을 휘호하였는데, 광사는 유배지인 신지도(薪智島)에서 1776년에 사망하였다. 실각한 소론가문의 후손으로, 가학(家學)으로 전승되어온 양명학(陽明學)의 분위기에서 성장한 저자가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동기는 의례서(義例序)에 잘 나타나 있다.
이에 의하면 종래 야사류로서 ≪대동야승 大東野乘≫·≪소대수언 昭代粹言≫ 등의 단점인 산만한 서술, 소홀한 자료수집, 균형 잃은 서술과 동서분당 이후 왜곡된 역사서술 등을 극복하고, 조직적인 체계, 편리한 열람, 정확하고 풍부한 사실의 수록, 불편부당한 서술을 추구함으로써 역사를 위한 역사를 찬술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내용은 조선 태조부터 현종까지 각 왕대의 중요한 사건을 고사본말(故事本末)의 형식으로 엮은 원집과 그가 생존했던 시기인 숙종 당대의 사실을 고사본말로 엮은 속집, 그리고 역대의 관직을 위시하여 각종 전례·문예·천문·지리·대외관계 및 역대 고전 등 여러 편목으로 나누어 그 연혁을 기재하고 출처를 밝힌 별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원집과 속집을 정치편이라 한다면 별집은 문화편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로 된 야사이다. 당시 조선왕조의 국사를 원집과 속집에 넣고, 국조(國朝)·사전(祀典)·사대(事大)·관직·정교(政敎)·문예·천문·지리·변어(邊圉:대외관계)·역대 고전 등을 별집에 수록하여 조선시대의 정치·사회·문화를 보다 조리 있고 다채롭게 이해, 파악하고자 하였다.
기사본말체의 서술방식은 비교적 진보된 서술로서, 역사상의 사건전말을 밝혀 역사 전개의 진상을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역사 서술에 있어서 인과성이 중요시된 것이며 사건해명을 위주로 한 역사책이라는 점에서, 19세기 서양의 사가들이 사실지상주의(事實至上主義)를 내세운 것과 다를 바 없는 역사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은 사람들의 귀나 눈에 익은 이야기들을 모아 분류하여 편집한 것이요, 하나도 나의 사견으로 논평한 것이 없다. 나는 사실에 의거하여 수록하기만 할 뿐 그 옳고 그름은 후세사람들의 판단에 미룬다.”라고 말하고 있듯이, 보다 객관적이고 체계적이며 합리적인 관점에서 편찬하였다.
따라서, 저자의 사견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특징이며, 오직 선배학자들의 기술을 그대로 옮겨놓은 뒤, 그 기사의 끝에 반드시 인용서목을 첨가해두었다는 것을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속집에는 사료의 출처가 밝혀져 있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보아 원저자만의 손으로 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원저자의 뜻에 부응한 것이다.
이 책에 인용된 조선시대의 야사·일기·문집류는 400여 종에 이른다. 주로 인용된 서책은 ≪고려사≫·≪국조보감≫·≪동국통감≫·≪삼국사절요≫·≪조선왕조실록≫ 등의 정사류보다는 ≪동각잡기 東閣雜記≫·≪기재잡기 寄齋雜記≫·≪식소록 識小錄≫·≪해동잡록 海東雜錄≫ 등의 야사류가 주가 된다.
또한, 문집류만도 100여 종에 이르는데, 그 활용한 빈도대로 밝히면 ≪율곡집 栗谷集≫·≪지봉유설 芝峰類說≫·≪하담집 荷潭集≫·≪성옹집 醒翁集≫·≪음애집 陰崖集≫·≪월사집 月沙集≫·≪서애집 西厓集≫·≪염헌집 恬軒集≫·≪추강집 秋江集≫·≪사재집 思齋集≫·≪우암집 尤菴集≫·≪상촌집 象村集≫ 등이 있다. 서술 태도의 특징으로는 우선 역사적 사실의 취사선택에서 객관제일주의의 역사정신을 반영하였다.
즉, 저자의 사견이 없이 각 조항마다 반드시 그 인용서목을 밝힌 것은 실증사학의 연구태도와 일치되고 있다. 다음으로는 공정성을 그 생명으로 삼아, 사심 없이 불편부당의 필치를 보인 것이다. 그 증거로서 여러 선현을 부를 때 옛 사람들이 본명을 직서하지 않고 호·시호·자 등을 쓴 것을 비판하면서, 선현의 이름들을 직서(直書)하였다.
그것은 역사서술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또한, 역사의 현실성에 중점을 두어 서술하였다. 즉, 속집에서 당쟁에 관한 풍부한 자료를 수집하여 상세히 기술함으로써 역사로써 역사를 고발하게 하였다. 따라서, 저자의 평생사업으로 이룩한 대작인 이 책은 종래 체계가 없던 모든 야사에 대하여 정비된 체계를 세웠으며, 우리 나라 야사 가운데 가장 모범적이고 풍부한 사료의 하나로 대표된다고 하겠다.
1934년 계유출판사(癸酉出版社)의 ≪조선야사전집 朝鮮野史全集≫에 일부가 국한문체로 번역되어 나왔으며, 1966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고전국역총서 古典國譯叢書≫ 제1집 A5판 12권(색인 포함)으로 국역하여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