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일보 ()

목차
관련 정보
연변일보
연변일보
언론·방송
문헌
1948년에, 중국 연길에서 『길림일보』를 계승하여 창간한 한국어 신문.
목차
정의
1948년에, 중국 연길에서 『길림일보』를 계승하여 창간한 한국어 신문.
내용

중국에서 발행되는 한국어신문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역사가 가장 오래 되고 영향력이 크다. 창간 당시의 사장은 최채, 총편집은 임민호였고, 사원 수는 편집국과 공무국을 합쳐 101명이었다.

이 신문이 창간되기 전에 연길에는 다른 제호로 발행된 몇 개의 신문들이 있었다.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18일에 첫 한국어신문 ≪한민일보≫가 창간되었다가 11월 4일에 폐간되고, 이튿날부터는 연변민주대동맹 기관지 ≪연변일보≫가 창간되었으나 이듬해에 폐간되었으며, ≪길동일보≫·≪인민일보≫·≪길림일보≫라는 제호의 한국어신문들이 발간되었다.

≪연변일보≫는 ≪길림일보≫를 계승한 것으로, 연변지방 인민 군중의 해방투쟁과 생활건설의 정황을 보도한다는 목적을 내걸었다.

그러나 1949년 4월 1일에는 연길의 ≪연변일보≫와 하얼빈의 ≪민주일보≫, 통화(通化)의 ≪단결일보≫를 통합하여 연길시에서 ≪동북조선인민보≫를 발간하였다.

이 신문은 중국 연변 주정부의 기관지인 동시에 전동북의 조선족을 대상으로 하는 신문으로 남북만(南北滿)에 각각 주재기자를 두고 자체의 취재망도 갖추었다. 1951년 3월에는 동삼성 대표들이 참가한 제1차 통신원대표대회를 열기도 하였다. 그러나 동북국이 취소됨에 따라 1955년 1월 1일부터 ≪동북조선인민보≫는 다시 ≪연변일보≫로 제호를 바꾸었다.

1952년 4월 24일부터 한글전용으로 발행되었고, 1956년 3월 1일부터는 제호도 한글로 고쳤으며, 1956년 1월부터는 체재를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바꾸었다. 1958년 1월 1일부터는 한글판과 함께 중국어판도 발행하였다.

1953년부터는 ≪통신원의 벗≫이라는 잡지도 한글판·중국어판 두 가지를 발행하고 있는데, 한글판은 1959년까지 비정기적으로 발행되다가 1960년부터 월간으로 발행하고 있다.

한편, 이 신문은 1967년 2월 25일부터 이듬해 7월 말까지≪연변일보≫라는 제호를 쓰지 않고 ≪신화사전문≫이라는 제호로 발행되다가 1968년 8월 18일부터는 이전의 역사를 부정하고 ≪연변일보≫ ‘신1호’를 발행하였다. 그러나 4년 5개월 후인 1973년 1월 8일부터는 원래의 호수를 다시 계승하였다.

1982년 10월에는 ≪붓을 들어 30년≫이라는 연변일보 기자들의 기사선집을 출판하였고, 1988년 창간40주년에는 기자들의 수필집 ≪뜻깊은 회포≫, 기사선집 ≪40성상≫, 통신원들의 ≪긍지와 자랑≫을 출판하였다.

그리고 1989년부터는 이론잡지 ≪신문연구≫도 발간하는 한편, ≪업무학습≫·≪내부참고≫·≪신문간행물동태≫ 등을 부정기적으로 발행하고 있다.

1997년 현재 연변지역을 비롯하여 한국·북한·일본·미국 등 16개 국가에 보급되고 있다.

참고문헌

『광복 후 중국에서 발간된 조선문 신문』(최상철, 신문과 방송, 1991.9.)
『재외동포언론현황』(공보처 해외공보관, 1997)
관련 미디어 (1)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