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판문이 주로 그릇의 어깨 부분이나 굽의 둘레에 시문(施文)되고 있는 것은 연화가 지닌 특별한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도자기 등 그릇의 둘레에 연판문이 장식됨으로써 그 물건의 비범성(非凡性)과 청정(淸淨)함을 나타내어 일반의 비속(卑俗)한 존재와 구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연판문의 표현양상은 대개 다음과 같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 연화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활짝 핀 연꽃 모양을 나타낸 것, 둘째 화판 안에 엽맥(葉脈)이 표현된 것, 셋째 연판이 중판(重瓣)으로 묘사되어 아무런 장식이 가미되지 않은 것, 넷째 연판이 중판으로 묘사되고 화판 안에 당초(唐草) 모양이 장식된 것, 다섯째 연판이 중판으로 묘사되고 화판 안에 국화문(菊花文)이 배치된 것, 여섯째 연판이 중판으로 묘사되고 화판 안에 소원문(小圓文)이 영락(瓔珞) 모양으로 배치된 것, 일곱째 화판 안에 운문(雲文)이 하나씩 배치된 것, 여덟째 화판이 여러 겹으로 묘사되어 추상적으로 표현된 것, 아홉째 화판 안에 보상화문(寶相花文)이 장식된 것 등이다.
우리 나라 공예미술에서 연판문 형식의 유례를 보면, 함경북도 웅기면 송평동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채문토기장경호(彩文土器長徑壺,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어깨 부분에 둘러진 연판문은 굵은 적색(赤色) 선조(線條)로 윤곽을 묘사한 꽃잎 3개가 겹쳐진 모양이어서 매우 추상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 화판이 연화를 묘사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연판문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삼국시대에 불교조형이 시작되고부터라 하겠는데, 고구려 고분벽화 중 감신총(龕神塚) 등에서는 신상(神像)의 대좌에 보이고, 또 연가7년명금동불입상(延嘉七年銘金銅佛立像,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대좌에서도 볼 수 있다. 그 연화좌의 화판은 끝이 뽀족하여 고구려적인 강직한 특성이 엿보인다. 반면에 백제미술에서는 화판이 원만하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며, 신라시대의 연판문은 남북조식(南北朝式) 불상조각의 영향으로 우아한 양상을 띠고 있다.
연판문으로서 장식문양화된 것은 통일신라기에 이르러서이며, 범종(梵鐘)을 비롯하여 각종 불구류(佛具類)와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 그리고 금고(金鼓)·향로(香爐)·동경(銅鏡) 등에서 다양한 연판의 양식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형식은 고려시대에 와서 단조로운 선으로 시문되어 더욱 간결하여지고 있다.
특히, 연꽃으로 이루어진 부처의 세계인 극락정토를 의미하여 불당 건물의 주초(柱礎)나 석탑·석등, 각종 불교 의구(儀具) 등 불교적 기물에는 연판문을 둘러 장식하여 받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