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호(烟戶)는 일반적으로 인가(人家) · 민호(民戶) 등을 의미하며, 가(家) · 호(戶) · 연(烟) 등과 동일한 개념이다. 연호라는 용어는 고구려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와 「신라촌락문서(新羅村落文書)」에 보이며,『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지(三國志)』에는 ‘호’ 또는 ‘가’로 표기되어 있다.
「광개토왕릉비」의 수묘인연호조(守墓人烟戶條)를 검토해 보면, 수묘인이 ‘가’ 또는 ‘연호’라는 단위로 차출되었으며, 수묘연호는 종족과 출신지가 다른 구민(舊民)과 신래한예(新來韓濊)의 두 집단으로 편성되었고, 또 수묘인연호가 국연(國烟)과 간연(看烟)으로 구분되었다. 수묘연호 가운데 구민에는 국연이 10, 간연이 1백이고, 신래한예에는 국연이 20, 간연이 2백이다. 구민과 신래한예의 비율이 1 : 2인 것은 「광개토왕릉비」건립 당시 고구려 구민과 새로 편입된 피정복지의 복속민(服屬民)의 비율이 1 : 2였음을 반영한다. 또, 국연과 간연의 비율이 1 : 10임은 당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비율이 1 : 10이었음을 반영한다.
국연과 간연의 성격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견해가 제기되었으나 국연이 수묘역(守墓役)의 수행에 주가 되고 간연이 보조적 기능을 수행한 것으로 보는 것이 주된 견해이다. 하지만 국연과 간연의 구체적 차이에 대해서는 재산상의 차이, 신분상의 차이, 입역상의 차이 등으로 구분하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먼저, 국연의 의미에 대해서는 ‘국(國)’이 광개토왕릉과 능비가 있는 ‘국강상(國岡上)’을 의미하며 국강상에 사민되어 수묘역에 종사하는 연호를 가리킨다고 보기도 한다. 그리고 단지 수묘역뿐만 아니라 국가의 공적인 역을 수행하는 연호라는 보편적 의미로 보기도 한다. 간연은 ‘간(看)’이 ‘지켜보다’ ‘망을 보다’라는 의미라는 점에서 왕릉의 간수(看守) · 간시(看視) · 간호(看護)를 담당한다고 해석하기도 하며, 신라의 관원인 간옹(看翁)을 일반화된 기능수행에서 숙달된 존재로 보고 이를 근거로 농업생산 등에 종사하여 국연의 경제적 필요를 담보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보기도 한다.
다음으로, 국연을 피정복민 가운데 호민(豪民)에 해당하는 지배층 혹은 부유층으로, 간연은 하호(下戶)에 해당하는 피지배층 혹은 평민층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며, 국연은 직접적으로 역을 지는 존재이고 간연은 경제적으로 국연을 뒷받침하는 예비 수묘인이거나 간연은 결원을 대비한 인원이라는 견해가 있다. 또한, 국연은 혼자서 수묘역을 감당 할 수 있는 부유한 호(戶)이고 간연은 10가가 합쳐서 국연 1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영세한 호라고 보는 등 다양한 견해가 있다. 그리고 국연과 간연을 수묘역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고구려의 국역(國役)편제에서 연호 일반을 파악하는 보편적인 편제방식일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국연-간연 체제는 읍락 사회의 해체과정에서 고구려 중앙권력이 지방행정체계를 통해 개별 연호와 인정(人丁)을 직접적으로 파악 지배하는 형태로 한 단계 진전된 대민지배체제가 성립된 데 의미가 있다.
수묘인연호의 사회적 성격에 관한 논의는 노예설(奴隷說)과 양인속민설(良人屬民說)이 있다. 노예설은 수묘인연호가 전쟁포로이고 매매의 대상이 되었던 점에 근거하고 있다.
양인설은 수묘인연호가 ‘가’로 표기되어서 가족의 존재와 자기경리(自己經理)를 인정할 수 있다는 점과 신분보장이 전제되었다는 점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매매 자체가 원래부터 불법이었으나 공공연한 매매가 이루어졌던 점으로 볼 때 번상제(番上制)로 입역하는 양인(良人)으로 보기도 어려워 최근에는 수묘인연호를 양인보다 신분이 낮으며, 특수직역인집단(特殊職役人集團)으로 파악하려는 연구도 있다. 본래 천인은 아니었으나 수묘역을 부담하면서 천민화 되어갔을 것으로 추정하였고, 수묘인은 묘역 근처로 강제로 사민된 복속민으로서 촌락을 이루어 수묘역을 담당하며, 고구려민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다고 보는 것이다.
「신라촌락문서」에는 연호와 관계되는 용어로서 ‘공연(孔烟)’ · ‘공(孔)’ · ‘연(烟)’ 등 세 가지가 있으며, 이들은 모두 ‘호(戶)’에 해당된다. ‘공연’의 해석에 따라서 연호의 성격이 ‘공연자연호설(孔烟自然戶說)’과 ‘공연편호설(孔烟編戶說)’로 대별된다.
공연자연호설은 공연과 연을 동일시해 연을 자연히 성립한 가구공동체(家口共同體)로 보는 견해이다. 공연에는 중하(仲下) · 하상(下上) · 하중(下仲) · 하하(下下) 등의 등급이 있고, 다시 등급 외의 호로서 수좌내연(收坐內烟)이 있다. 신라의 등급연(等級烟)은 상상연(上上烟)에서 하하연(下下烟)까지 9등호제(九等戶制)로 되어 있었을 것이다. 신라의 9등호제는 당나라의 그것에 영향을 받았지만, 호등(戶等)의 구분기준은 당나라와 같이 재산의 대소가 아니라 『고려사(高麗史)』에 나오듯이 인정(人丁)의 많고 적음에 의했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공연편호설은 「신라촌락문서」의 호당 평균 인구와 경작 면적이 후대에 비해서 훨씬 많다는 의문에서 출발해 공연을 자연호가 아닌 편호로 보려는 견해이다. 공연과 연은 어떤 기준에 따라 하나의 자연가호(自然家戶)를 중심으로 다른 자연가호나 인(人)을 채우는 것이며, 이 때의 자연가호는 연으로 표기된다.
공연의 등급평가는 정(丁) · 조(助)의 수를 일차적인 기준으로 하되 각기의 자산상의 조건, 즉 경지의 면적 및 그 중에서도 답(畓: 논)의 비중이 참작되어 정해졌다. 공연편호설은 과거 해석이 곤란하였던 이 두 부분을 순조롭게 해석하고 농업기술상 휴한법(休閑法) 단계로 고찰했지만, 편호의 기준과 편호의 이유 등에 대한 뚜렷한 설명은 보강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