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구려 때는 동음홀(冬音忽), 신라 때는 해고군(海皐郡)이었는데, 고려 전기에 염주로 고쳤다가 1217년(고종 4)영응현(永膺縣)으로 바꾸었다.
이 지역은 예성강(禮成江)을 사이에 두고 개성과 마주보는 지역으로 고려시대에는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시되던 곳이었다. 931년(경순왕 5) 견훤(甄萱)이 부하 일길(一吉)에게 수군을 보내어 예성강에 들어가 3일간 머무르며 고려의 백주(白州)·염주·진주(眞州)의 배 100여척을 불사르게 하였다. 또한, 몽고군이 이곳에 오래 주둔하였고, 홍건적의 난 때는 격전이 벌어진 곳이었다.
염주의 지명유래는 성(城) 또는 평야 지역에 우뚝 솟은 산이라는 데에서 나왔다. 지금의 연안읍 지역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