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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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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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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관직.
내용

신라의 병부(兵部)·조부(調府)·경성주작전(京城周作典)·창부(倉部)·예부(禮部)·승부(乘府)·사정부(司正府)·예작부(例作府)·선부(船府)·영객부(領客府)·좌이방부(左理方府)·우이방부(右理方府) 등 중앙의 제일급 관청의 장관 이름인데, 759년(경덕왕 18)에 내성(內省)의 장관 사신(私臣)을 잠시 영으로 고친 적이 있으며, 805년(애장왕 6)에 위화부(位和府)와 사천왕사성전(四天王寺成典)·봉성사성전(奉聖寺成典)·감은사성전(感恩寺成典)·봉은사성전(奉恩寺成典)의 장관직인 금하신(衿荷臣)을 역시 영으로 고쳤다.

영은 사정부·예작부·선부 등이 1인으로 되어 있는 외에 대개의 경우 2인을 원칙으로 하였으며, 많은 경우에는 경성주작전처럼 5인을 두기도 하였다. 또한, 그 관등은 거의 대개의 경우 대아찬(大阿飡) 이상으로써 임명되었으므로, 사실상 진골(眞骨)이 독점하는 관직이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집사부(新羅執事部)의 성립(成立)」(이기백, 『진단학보(震檀學報)』25·26·27, 1964)
「三國史記にあらわれた新羅の中央行政官制について」(井上秀雄, 『朝鮮學報』51, 1969 ; 『新羅史基礎硏究』, 東出版,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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