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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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인물
신라의 4선으로 일컬어지는 화랑.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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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신라의 4선으로 일컬어지는 화랑.
내용

술랑(述郎)·남랑(南郎)·안상(安詳) 등과 더불어 이른바 사선(四仙)의 하나로 꼽혔으며, 금강산 방면의 여행과 놀이로 이름났다.

그의 족적은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문인들 사이에 회자되어 ‘영랑도남석행(永郎徒南石行)’이라 바위에 새겨진 삼일포(三日浦 : 지금의 강원도 고성군) 방면을 답사, 기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금강산에는 실제로 그의 이름에서 유래한 ‘영랑재[永郎峴]’가 있었다고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그의 낭도 가운데는 진재(眞才)·번완(繁完) 등이 특히 유명하였다고 한다.

최근 학계에 알려진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서석(書石)의 명문에 ‘술년 6월 2일 영랑 성업(戌年六月二日永郎成業)’이라 한 것이 보이고 있어, 그가 화랑으로서의 수련기간을 마친 것을 기념한 각문(刻文)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 영랑이 바로 효소왕 때의 영랑 일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가정집(稼亭集)』
『속동문선(續東文選)』
『한국금석유문(韓國金石遺文)』(황수영, 일지사, 1976)
『新羅花郎の硏究』(三品彰英, 三省堂, 1943)
「화랑상(花郎像)의 변천(變遷)에 관한 각서(覺書)」(이기동, 『신라문화(新羅文化)』5, 1989)
「신라화랑도(新羅花郎徒)의 사회학적(社會學的) 고찰(考察)」(이기동, 『역사학보(歷史學報)』82, 1979 ; 『신라(新羅) 골품제사회(骨品制社會)와 화랑도(花郎徒)』, 한국연구원, 1980)
「花郎攷」(鮎貝房之進, 『雜攷』4,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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