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묘사성전 ()

목차
고대사
제도
신라시대의 관서. 영묘사를 관리하였다.
목차
정의
신라시대의 관서. 영묘사를 관리하였다.
내용

영묘사는 경주시 서악동(西岳洞)에 있는 신라시대의 사찰로서 635년(선덕여왕 4)에 성신(星神)을 제사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759년(경덕왕 18)의 관제개혁 때 영묘사성전은 수영영묘사사원(修營靈廟寺使院)으로 개칭되었다가 776년(혜공왕 12)에 원래대로 복구되었다.

관원으로는 처음에는 상당(上堂) 1인, 청위(靑位) 1인, 사(史) 2인이 있었다. 그러나 759년의 관제개혁 때 상당은 판관으로, 청위는 녹사로 개칭되었다가 776년에는 다시 원래대로 복구되었으며, 애장왕 때에 청위는 대사(大舍)로 개칭되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황룡사구층탑지의 연구-성전(成典)과 정법전(政法典)문제를 중심으로-」(변선웅, 『국회도서관보』 10-10, 1973)
「신라중대 왕실사원의 관사적(官寺的)기능」(이영호, 『한국사연구』 43, 1983)
「신라통일기의 성전사원(成典寺院)의 구조와 기능」(채상식, 『부산사학』 8, 1984)
「新羅の寺院成典と皇龍寺の歷史」(浜田耕策, 『學習院大學文學部硏究年報』 28, 1981)
집필자
노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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