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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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전라남도 나주 지역의 옛 지명.
이칭
이칭
흑산현(黑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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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나주 지역의 옛 지명.
내용

본래 흑산도 주민들이 왜구를 피하여 이곳에 옮겨와 남포강변(南浦江邊)에 거주하면서 영산현이 되었다. 일명 흑산현(黑山縣)이라고도 한다. 1363년(공민왕 12)영산군으로 승격시켰다가 조선 초기에 나주군에 병합시켰다.

조선시대에는 신촌면(新村面)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영산면이 되었다. 1981년나주읍과 영산포읍이 통합되어 금성시가 이에 포함되었고, 1986년금성시에서 나주시로 명칭이 변경되어 영산동이 되었다.

역사적으로는 신라 말기 효공왕 때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이 지역을 공략하여 점령하였으나, 뒤에 태봉(泰封)의 궁예(弓裔)가 파견한 왕건(王建)의 부대와 대접전이 벌어져 견훤이 대패하였다. 고려 말기에 왜의 침입을 받았고 임진왜란 때 그들에게 점령당한 적이 있다.

이 지역은 주산인 가요산(歌謠山)을 중심으로 발달한 나루터취락으로 조선시대에는 영산포가 있어 나주평야의 물산을 이곳 영산창(榮山倉)에 모으기도 하였고, 근래까지도 등대가 설치된 곳이었다. 나주에서 이곳을 지나 강진과 장흥을 잇는 도로가 발달하여 수륙교통의 요지였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대동지지(大東地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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