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은 본래 별도의 행정구역이 없었는데, 930년(태조 13) 양정(湯井: 지금의 牙山)·대록(大麓: 지금의 木川)·사산(蛇山: 지금의 稷山) 지역의 땅을 떼어 천안부(天安府)를 설치하였다.
성종 때 환주(歡州)로 고쳐 도단련사(都團練使)를 두었고, 목종 때 이를 없앴다가 현종 때 복구시켜 지군사(知郡事)를 설치하였다. 이 시기에 천안은 온수군(溫水郡)을 비롯하여 아주(牙州)·신창(新昌)·풍세(豊歲)·평택(平澤)·예산(禮山)·직산(稷山)·안성(安城) 등 7개 현을 다스리게 하였다.
충선왕 때 영주(寧州)로 고쳤다가 공민왕 때 다시 천안부로 환원하였다. 1413년(태종 13) 영산군으로 고쳤다가 3년 후천안으로 환원시켰다. 따라서 영산이라는 지명은 조선 초기에 3년간 쓰였을 뿐이다.
영산이라는 지명은 태종 때 군현을 고침에 있어 고을이 번성하지 못한 곳은 모두 ‘주(州)’자 대신 ‘산(山)’이나 ‘천(川)’자를 붙이기로 함에 따라 고려시대의 영주가 영산이 된 것이다.
이곳은 고려 태조가 10만 대군으로 견훤의 군대와 결전하여 승리한 곳으로 새로 부를 설치하여 아산만 일대의 행정중심지를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