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구려의 땅이었으나 오랫동안 황폐한 채로 있다가 고려 때정수현(定水縣)을 설치하였다. 그 뒤에 영청(永淸)으로 바꾸어 용강현(龍岡縣)에 속하게 하였으며, 뒤에 다시 현령을 두었다.
1256년(고종 43) 현령을 폐하고 안인진(安仁鎭)에 속하였으나, 1269년(원종 10) 원나라에 점령되었다. 1278년(충렬왕 4) 수복하였으며, 1358년(공민왕 7) 다시 분할하여 영유현이 분리되었다.
1393년(태조 2) 안인진을 안주(安州)로 이속시키고 함종(咸從)에 소속된 통해현(通海縣)을 영유현에 합하였다. 영원(寧遠)ㆍ유원(柔遠)의 두 진(鎭)을 합쳐 영녕현(永寧縣)이라 하였다가 1423년(세종 5) ‘寧(녕)’자를 피하여 영유현(永柔縣)이라 고쳤다. 1895년(고종 32) 승격하여 군이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평원군에 속하였다.
고려 초기에는 이곳이 북방의 국경지대였으므로 태조가 영청진(永淸鎭)을 축성한 이후 통해진ㆍ평로진(平虜鎭) 등을 계속 설치하였다. 목종 때에는 관성(關城)을 쌓아 국경의 출입국사무를 보게 하였다. 거란ㆍ몽고 등의 침입시 격전이 벌어지기도 하였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선조가 이곳을 거쳐 의주로 피난을 가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와룡산(臥龍山)ㆍ미두산(未豆山) 봉수와 냉정참(冷井站)을 설치하여 국경지대의 변란을 신속하게 중앙에 전달하도록 하였다. 또, 남창(南倉) 외에 많은 창고를 설치하여 군량미를 비축하도록 하였다. 이름난 유적으로는 선조가 피난 때 묵고 갔으며 영조가 사액하였다는 이화정(梨花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