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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 / 영일, 경주
대동여지도 / 영일,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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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경상북도 포항 지역에 있었던 옛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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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포항 지역에 있었던 옛 지명.
내용

동해 바다에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근오지현(斤烏支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임정현(臨汀縣)으로 개칭되었다가, 고려 건국 후 940년에 영일현(迎日縣)으로 칭하면서 생겨난 명칭이다. 1018년(현종 9) 지방 제도의 정비에 따라 이 지역은 동경유수관(東京留守官)의 속현이 되었다.

1390년(공양왕 2) 영일현에 감무가 파견되었다. 조선 초의 대폭적인 지방 제도 정비에 따라 흥해군·청하현·영일현·장기현의 네 지역으로 나뉘어 독자적인 행정구역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군사 동원 체제는 육군으로 1417년(태종 17) 영일진(迎日鎭)이 설치되어 흥해·영일·장기가 예속되었고, 해군으로 흥해에 통양포만호(通洋浦萬戶), 장기에 포이포만호(包伊浦萬戶)가 설치되었다. 이 때 청하는 따로 영해진(寧海鎭)에 예속되었다.

1895년 갑오개혁으로 전국이 23부로 개편되자 네 개의 군현이 모두 군이 되어, 영일·장기·흥해군은 동래부(東萊府)에, 청하군은 안동부(安東府)에 편입되었다. 그러다가 1896년 13도제가 실시되자 모두 4등군으로 경상북도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4개 군이 통합되어 영일군으로 개편되었으며 1읍 16면으로 되었다.

1934년 죽북면·죽남면이 통합되어 죽장면으로 개칭되었고, 장기면·봉산면이 통합되어 지행면으로 개칭되었다. 1942년 창주면이 구룡포읍으로 개편되었으며, 1945년 3월 구룡포읍에 대보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49년포항읍이 시로 승격, 분리되었고, 1956년 흥해면·곡강면이 통합되어 의창면이 되었으며 1957년 달전면이 폐지되었다. 1958년 죽장면에 상옥출장소가, 1967년 기계면에 기북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3년 의창면이, 1980년 연일면·오천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3년 의창읍이 흥해읍으로 개칭되었다. 1986년 구룡포읍 대보출장소가 동해면 대동·배동을 편입받아 대보면으로, 기계면 기북출장소가 기북면으로 각각 승격되었다.

1988년 면적은 1,050. 8㎢, 인구는 15만 9401명, 4개 읍 10개 면 196개 이가 있었으며, 군청 소재지는 포항시 덕산동이었다. 1995년 5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당시 포항시와 통합되어 새로운 포항시가 되었다. →포항시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경북향토자료지』(경상북도교육위원회, 1972)
『내고장 전통가꾸기』(영일군(迎日郡), 1981)
『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 1982)
『경상북도사』(경상북도, 1983)
『경상북도지명유래총람』(경상북도교육위원회, 1984)
집필자
김창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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