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8년(예종 3)윤관(尹瓘)이 여진을 몰아낸 다음 몽라골령(蒙羅骨嶺) 아래에 성을 쌓고 안령군영주방어사(安嶺軍英州防禦使)를 설치하였다. 그 뒤 1109년 성을 철거하고 그 땅을 여진에게 다시 돌려주었으나, 공민왕 때 수복하고 1390년(공양왕 2) 길주에 병합하였다.
위치상으로는 고려시대의 국경 지역에 속하므로 칠보산(七寶山)에서 학무산(鶴舞山)을 동서로 잇는 남쪽 지역이 되는 것으로 본다. 조선시대에 이곳에는 길주 북쪽의 고참현(古站峴)의 고개를 넘어서 북쪽으로 나가는 교통로가 있었다.
원래 여진으로부터 수복한 관북 지방의 구토에는 진동군함주대도독부(鎭東軍咸州大都督府)ㆍ안령군영주방어사ㆍ영해군웅주방어사(寧海軍雄州防禦使)ㆍ길주방어사(吉州防禦使)ㆍ복주방어사(福州防禦使)ㆍ공험진방어사(公嶮鎭防禦使) 등의 6성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