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 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435년(세종 17)에 대성전을 건립하고, 1513년(중종 8)에 군수 김흠조(金欽祖)가 중수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사인(士人) 이현남(李顯男)이 대성전에 봉안되어 있던 5성의 위패를 자양면 기룡산(騎龍山)의 성혈암(聖穴巖)으로 옮겨 난을 피하였다가 환안(還安:다시 제자리에 모시는 것)하였다.
1622년(광해군 14)에 군수 황효의(黃孝儀)가 중건하였으며, 명륜당은 1546년(명종 1)에 군수 이중량(李仲樑)이 창건하였는데, 1570년(선조 3)에 소실되었다. 임진왜란 뒤 1619년 군수 조명운(曺明鄖)이 중건하였다가 1782년(정조 6) 화재로 일부 건물이 소실되어 2년 뒤인 1784년 군수 심진(沈鎭)이 다시 수축하였다.
그 뒤 현종∼숙종 때 군수 한명원(韓明遠)이 전사청(典祀聽)을 신축하였고 고종 때 군수 남필우(南泌佑)가 보수하였다. 1970년에는 서재(西齋), 1972년에는 동재(東齋), 그리고 1973년에 전사청을 보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5칸의 대성전, 10칸의 명륜당을 비롯하여 동재·서재·삼일재(三一齋)·전사청·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과 송조 2현(宋朝二賢)의 위패가, 동무·서무에는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이 대성전은 1435년에 명나라 목수가 중국식 건축양식으로 준공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197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삼일재는 사마소(司馬所)라고도 하였는데, 이 지역 향사(鄕士)들이 후진을 양성하던 곳으로, 이곳을 거쳐 조선시대 대소과의 과거에 등과한 후손들이 경비를 갹출하고 관의 보조를 받아 건립한 건물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경장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1908년에는 향교의 전답을 재정적 기초로 하여 사립 영흥학교(永興學校)를 설립, 새로운 근대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듬해에 명륜학교(明倫學校)로, 1910년에 봉명보통학교(鳳鳴普通學校)로 개칭되었다가 국권 상실과 함께 1911년에는 영천공립보통학교로 이관, 개편되었다.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