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읍에서 남쪽으로 5㎞ 가량 떨어진 예당저수지 서편에 위치한 봉수산(鳳首山) 줄기의 능선상 해발 140∼160m 지점에서 사방공사 중 발견되었다.
조사 당시 출토유물의 대부분이 주민들에 의해 반출되고 유구(遺構)는 모두 파괴된 상태였기 때문에 유물의 배치상태나 유구의 정확한 성격은 파악할 수 없었다. 다만 발견주민들의 증언과 주위에 흩어진 상태로 남아 있는 일부 석재를 통해서 수매의 작은 판석을 두른 동서장축의 장방형 돌널무덤임을 추정할 수 있다.
돌널[石棺] 위에는 따로 뚜껑돌[蓋石]이 덮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묘곽부위에는 많은 양의 할석(割石)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던 것으로 보아 돌널무덤 위에 따로 돌무지[積石] 시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돌널의 바닥은 흙바닥 그대로였다.
바닥과 묘광(墓壙)의 벽면에 회백색의 진흙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아 원래 바닥에 진흙을 깔고 돌널과 묘광의 사이도 진흙으로 채웠던 것으로 생각된다. 유물 중 대롱옥[管玉]과 소옥들이 묘광의 서편에 치우쳐 출토된 것은 이 피장자(被葬者)의 머리가 서쪽을 향했음을 보여준다.
출토유물은 동검 9점, 대쪽모양[劍把形] 동기 3점, 나팔형 동기 1점, 동경(銅鏡) 2점, 원개형(圓蓋形) 동기 1점, 대롱옥 및 소옥 126점, 간돌살촉[磨製石鏃] 5점, 흑색토기 목항아리[長頸壺] 1점, 덧띠토기[粘土帶土器] 1점 등이 있다.
이 중 나팔형 동기 2점은 한반도 내에서는 처음 발견된 것으로서 이와 같은 형태의 유물이 중국 요령(遼寧)에서 출토된 예가 있어 당시 양 지역간의 교류문제를 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유적은 출토유물의 성격으로 보아 서기전 3세기에서 2세기 중엽에 축조된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