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8년 9월부터 1469년 11월까지 예종의 재위 1년 3개월 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8권 5책. 활자본. 정식 이름은 ‘예종양도대왕실록(睿宗襄悼大王實錄)’이다.
예종이 죽은 다음해인 1470년(성종 1) 2월, 춘추관(春秋館)에서 전 왕대의 실록을 편찬하라는 왕명을 받아 사초(史草)를 꺼냈다. 그러나 당시 『세조실록』의 편찬을 위해 그 안에 설치했던 실록청(實錄廳)의 작업이 끝나지 않은 관계로 곧 착수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이듬해인 1471년 12월 『세조실록』 편찬을 완료한 뒤 곧바로 편찬에 착수, 반년 뒤인 1472년 5월에 완성하였다. 따라서, 편찬관은 『세조실록』 편찬 때와 비교해 인원이 약간 감소하고 소수의 새로운 인물이 참여했다는 차이점이 보이기는 하지만, 대체로 동일인물이 많다.
편찬에 관여한 춘추관 관원은 다음과 같다. 영관사(領館事)는 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 감관사(監館事)는 최항(崔恒), 지관사(知館事)는 강희맹(姜希孟)·양성지(梁誠之), 동지관사(同知館事)는 정난종(鄭蘭宗)·김수녕(金壽寧)·예승석(芮承錫), 수찬관(修撰官)은 김지경(金之慶)·유권(柳睠) 등이다.
편수관(編修官)은 김뉴(金紐)·고태정(高台鼎)·임사홍(任士洪)·성숙(成淑)·박시형(朴始亨)·김신(金新)·최경지(崔敬止)·노공필(盧公弼), 기주관(記注官)은 정휘(鄭徽)·유자분(柳自汾)·노금(盧昑)·김극검(金克儉)·최숙정(崔淑精)·박시형(朴時衡)·김윤종(金潤宗)·손비장(孫比長)·남계당(南季堂), 기사관(記事官)은 남윤종(南潤宗)·김중연(金仲演)·최철관(崔哲寬)·안침(安琛)·채수(蔡壽)·김륜(金崙)·김예원(金禮遠)·손창(孫昌)·양자유(楊子由)·김종(金淙)·김미(金楣)·강거효(姜居孝)·안진생(安晉生)·정이교(鄭以僑)·박처륜(朴處綸)·김직손(金直孫)·이박(李博) 등이다.
이 실록은 예종이 즉위한 1468년 9월 7일부터 1469년(예종 1) 11월 28일까지의 약 1년 3개월 간에 있었던 정치·외교·국방·경제·사회·문화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이 연월일순에 따라 편년체(編年體)로 서술되어 있다. 따라서, 예종 대의 사실(史實)은 물론이고 조선 초기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에 있어 근본적인 자료이다.
임진왜란의 병화로 세 사고(史庫)의 실록이 없어지고 전주사고의 것만 남게 되자, 1603년(선조 36) 7월부터 1606년 3월까지 실록 간행 사업을 일으켰는데, 이 때 이 실록도 다른 실록과 함께 3부가 간행되었다. 이로써 전주사고의 원본과 간행시의 교정본을 합해 모두 5부를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춘추관에 보관되어 있던 실록은 1624년(인조 2)이괄(李适)의 난 때 타버렸다. 1920년대 이후 조선 역대 왕의 실록이 여러 차례 영인되었을 때 함께 영인본이 간행되었다. 국역본은 1979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전 2책으로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