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이며 호는 금산(錦山)이다.
고려 말에 예의전서(禮儀典書)·경상도 안렴사 등을 역임하였다. 포은 정몽주의 문인으로 경상도 안렴사로 파견되어 순찰하던 도중인 1392년(공양왕 4) 정몽주가 이방원에 의해 선죽교에서 격살되었음을 전해 듣고는 사흘 동안 통곡하였다. 이후 관리의 인을 땅에 묻고는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의 어봉산으로 들어가 은둔하였다고 한다. 이후 조선이 건국되고 태조가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지만, 매번 거절하였다. 전령이 왕의 교지를 전하기만 하면 단촌 앞 맑은 물에 귀를 씻었다고 전하는데, 사람들은 그가 귀를 씻은 냇물을 세이천(洗耳川)이라 불렀다. 오국화가 남긴 글들은 『금산실기(錦山實記)』에 수록되어 있다.
현재 경상북도 의성지역에는 오국화를 추모하는 여러 시설들이 남아 있는데, 의성읍 업리의 우곡마을에는 그의 사단(祀壇)과 우곡재(愚谷齋), 우곡서당(愚谷書堂), 신도비각(神道碑閣) 등이 있다. 한편, 오국화가 귀를 씻던 세이천 북안 절벽 위에도 세천정(洗川亭)과 유허비각이 있고, 의성읍내의 도동동에는 금운정(錦雲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