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덕구(德耉), 호는 묵재(默齋). 오원몽(吳元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직장 오극권(吳克權)이고, 아버지는 직장 오세현(吳世賢)이다.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참봉 성근(成近)의 딸이다. 형조판서 오억령(吳億齡)의 동생이다.
1588년(선조 21)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다. 임진왜란 때 왜적이 어머니를 죽이려 하자 몸으로 가로막아, 왜적이 오백령의 효심에 감동해서 살려주어 효자로 이름이 났다.
1594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뽑혀 사관(史官)이 되었고, 이어 정언(正言), 예조와 병조의 좌랑, 재령군수·응교(應敎)·사인(舍人)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광해군 때 동부승지가 되어 복천군(福川君)에 봉하여졌으며, 천추사로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여러 참판을 거쳐, 1618년(광해군 10)에 폐모론의 정청(庭請: 세자, 또는 삼정승이 백관을 거느리고 궁궐에 대사(大事)를 알리고 임금의 명을 기다림)에 참여하지 않았다가 파직되고, 성밖에 은거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형조참판에 기용되고, 이어 도승지·대사간·이조참판·성균관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이괄(李适)의 난 때에 왕을 공주에 호종한 공으로 승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