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 (Australia)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기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기
외교
지명/국가
오세아니아 남태평양과 인도양 사이에 있는 연방국.
이칭
이칭
오스트레일리아연방, Commonwealth of Australia
정의
오세아니아 남태평양과 인도양 사이에 있는 연방국.
개관

정식 명칭은 오스트레일리아연방(Commonwealth of Australia)이며, 해안선의 길이는 2만 5760㎞이다.

영연방의 일원으로 면적은 774만 1220㎢, 인구는 2275만 1014명(2015년 현재), 수도는 캔버라(Canberra)이다.

주민의 89.2%가 유럽계 백인이며, 아시아계가 4.1%, 원주민이 1.6%이다. 영어가 공용어이며, 종교는 성공회 36%, 가톨릭교 33%, 감리교 9.6%, 장로교 8.7% 등이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농업 · 광업 등 제1차산업에서 벗어나 공업국가가 되었으며, 1909년 이래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하여 서구형의 사회복지국가가 되었다. 최근에는 백호주의(白濠主義)에서 벗어나 아시아계 이민을 받아들인다.

2015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1조 5774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6만 7068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입헌군주제의 영국식 의원내각제이며, 의회는 양원제로 임기 3년의 상원(76석)과 하원(150석)으로 구성된다. 주요 정당은 노동당, 자유당, 국민당, 민주당 등이다.

약사

이곳은 1606년 네덜란드 선박이 정박한 이래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1770년 8월 영국인 제임스 쿡이 본격적으로 탐험하여 이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후 1776년 미국의 독립전쟁이 일어나자 영국은 죄수들을 이곳 오스트레일리아로 옮겨 왔으며, 이들이 중심되어 신도시를 건설하여 국토를 개척하였다.

이후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삼권분립, 양원제, 의원내각제 등을 골자로 하는 헌법안을 영국에 제출하였고, 1901년 1월 1일 연방헌법안이 영국의회를 통과하게 됨에 따라 독립하여 국가로 출범하였다. 그동안 백호주의 등 배타적인 정책을 채택하여 왔으나 1980년대에 들어와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진출하여 공동체 의식을 갖기 시작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친서방 자유진영으로 1945년 유엔에 가입하였다.

한국과의 관계

우리나라는 1961년 10월 31일 외교관계를 맺고 상주대사관을 설치하였으며, 2008년 현재 상주공관이 개설되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1948년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일원이었으며, 1949년 8월 한국을 승인한 데 이어 6·25전쟁 중에는 연 2만 명이 참전하였다. 캔버라에 있는 전쟁기념관에는 한국기념관이 있으며, 한국참전용사회는 매년 4월 24일 중국군의 춘계공세를 막아냈던 가평전투를 기념하여 ‘가평의 날’ 행사를 가지고 있다.

1967년 4월 오스트레일리아 총리의 방한 이후 상호 정상방문으로 양국의 협력기반이 강화되었으며, 국제무대에서는 한국측 입장을 지지해왔다. 1970년 3월 현대건설주식회사가 항구 준설공사를 맡은 뒤, 한국의 3개 회사가 건설공사에 참여하였다.

또한, 양국은 1965년 9월 무역 협정을 체결한 이래 1971년 5월 문화 협정, 1978년 10월 핵안전조치 협정, 1982년 12월 어업 협정, 1983년 11월 핵협정, 1990년 5월 범죄인인도조약, 1990년 9월 항공 협정,1992년 8월 형사사법공조조약, 1993년 6월 산업기술협정, 1995년 7월 취업관광비자발급 약정, 1997년 8월 핵물질재이전교환각서, 1999년 9월 과학기술협력 협정, 전자상거래양해각서 서명, 2000년 1월 민사사법공조각서, 2004년 8월 에너지및광물자원협력 협정, 2006년 12월 사회보장 협정, 2006년 12월 철새보호 협정 등을 체결하였다.

우리나라의 대 오스트레일리아 수출액은 2015년 현재 108억 달러로 주종목은 자동차, 무선통신기기, 석유제품, 영상기기, 종이제품 등이고, 수입액은 164억 달러로 주종목은 원유, 석탄, 철광, 알루미늄, 육류 등이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399명의 오스트레일리아 선수단이 참가하였다. 2015년 현재 KOTRA를 비롯하여 관광공사, 대한광업진흥공사, 현대, 삼성, 대우, LG, 외환은행 등의 업체가 진출해 있고, 3만 명의 유학생을 포함하여 약 15만 명의 재외국민이 있다.

한편, 북한은 1974년 7월 31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상주대사관을 설치하였으나 1975년 10월 30일 유엔에서 오스트레일리아가 한국을 지지하자, 북한측은 대사관을 일방적으로 철수시켜 현재까지 외교동결상태에 있다.

양측은 1958년 12월 북한 · 하이네브러더공사 간 무역 및 통상 협정을 체결한 이래, 2001년 6월 과학교류합의서, 2002년 2월 농업공동연구 및 개발계획에 관한 양해각서, 2004년 5월 채소해충공동연구 양해각서 등을 체결하였다. 2008년 1월 북한은 주 오스트레일리아 북한대사관을 폐쇄하였다.

북한의 대 오스트레일리아 수출액은 2007년 현재 743만 달러로 주종목은 전기기기 · 기계류 · 수송차량 · 자주식불도저 등이고, 수입액은 없다.

참고문헌

『세계각국편람』(외교통상부, 2008)
『한국의 창』(동아일보사, 2008)
『해외동포현황』(외교통상부, 2007)
『세계무역통계』(한국무역협회, 2007)
『주요수출입통계』(관세청, 2007)
『오스트레일리아』(선진권국별편람, 산업연구원, 1985)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김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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