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문중(文仲), 호는 완월당(翫月堂). 아버지는 현감 오하몽(吳下蒙)이다. 같은 시기 활동한 오응정(吳應井, 1559~1597)과는 동명이인이다.
1574년(선조 7)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왕이 의주에 몽진(蒙塵: 임금이 난시에 피난함)할 때 호종하였으며, 수탄장(守灘將)으로 평양탈환전에 참가하였다.
1594년 중군이 되어 전공으로 상을 받았다. 1597년 정유재란 때 행호군(行護軍), 순천부사(順天府使)가 되어 전라도 순천을 수비하였으며, 이후 왜적 방어를 위해 병마절도사 이복남(李福男) 등과 함께 남원성에 들어가 지켰다.
왜적이 남원에 대거 밀려들자 남원성전투에 참여하여 중군 이신방(李新芳), 접반사 정기원(鄭期遠), 병마절도사 이복남, 조방장 김경로(金敬老), 남원부사 임현(林鉉), 전라도방어사 오응정(吳應井) 등과 함께 장렬히 전사하였다. 한성부좌윤에 추증되었으며, 남원과 금산의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