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익승(翼承), 호는 사호(思湖). 할아버지는 오세기(吳世紀)이고, 아버지는 전한(典翰) 오건(吳健)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김우옹(金宇顒)의 천거로 장현광(張顯光)과 함께 발탁되었으나, 길이 막혀 나아가지 못하고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1595년 진안현감이 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정언(正言)을 거쳐, 경성판관을 지냈으며, 1613년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옥사와 폐모론을 둘러싸고 대북세력과 각축을 벌이다가 삭직당한 뒤 고향인 영남으로 퇴거하였다.
1614년 영창대군의 처형을 공격하던 정온(鄭蘊)이 제주로 유배당하자, 영남의 유생들을 이끌고 반대상소를 하였다. 이로 인해 정인홍(鄭仁弘)의 미움을 사, 토산(兎山)으로 유배당하였으며 그곳에서 죽었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문집으로 『사호집』을 남겼다. 인조반정 후 승지를 추증받았고, 산청의 서호사(西湖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