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의 인장으로서 옥으로 제작한 것을 옥새, 금으로 제작한 것을 금보(金寶) 혹은 금인(金印)이라 하였으나, 금보도 옥새로 통칭되는 경우가 많았다.
고대 중국의 왕들은 권위의 상징으로 금인을 사용하였으나, 진시황제(秦始皇帝) 때 ‘화씨벽(和氏璧)’을 얻어 천자의 인장을 제작한 뒤부터 역대의 황제들이 옥새를 사용하였다.
금인은 제후나 친왕들에게 사용되었고, 부여 이래 중국에서 우리나라 왕들에게 준 것도 금인이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옥새로 불렀다.
여기에는 ‘濊王之印(예왕지인)’·‘高麗國王之印(고려국왕지인)’ 혹은 ‘朝鮮國王之印(조선국왕지인)’ 등의 인문을 새겼다. 1897년(광무 1)에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옥새를 제작, 사용하였는데 그 인문에는 ‘大韓國璽(대한국새)’·‘皇帝之璽(황제지새)’의 두 가지가 있었다.
옥새는 왕조시대의 권위와 정통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대교린의 외교문서 및 왕명으로 행하여지는 국내문서에 사용되었고, 왕위계승시에는 전국(傳國)의 징표로 전수되었다.
또한, 국왕의 행차시에는 그 위의를 과시하기 위하여 행렬의 앞에서 봉송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옥새는 상서원(尙瑞院)에서 도승지의 책임 아래 관리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는 옥새의 개념이 폐지되고 새로운 국가의 상징으로 국새(國璽)제도가 마련되어 1949년 5월 ‘大韓民國之璽(대한민국지새)’가 제작되었고, 1970년 3월 인문을 한글 전서체(篆書體) ‘대한민국’으로 고쳤다. →국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