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온천 지명이다. 백제시대에는 탕정(湯井)이라 하였는데, 서기 18년(온조왕 36)에는 탕정성(湯井城)을 쌓고 대두성(大豆城)과 나누어 백성들을 살게 하였다.
신라의 영토로 편입된 뒤 671년(문무왕 11)에 탕정주(湯井州)로 승격시켜 총관(摠管)을 두었다가 681년(신문왕 1)에는 탕정군으로 격하시켜 웅주(熊州)에 예속시켰다.
후삼국 통일 전쟁시 927년(태조 10)에 고려태조가 탕정군에 와서 유금필(庾黔弼)에게 명하여 성을 쌓게 하였다. 940년에 탕정군을 온수군(溫水郡)으로 개칭하였다. 조선 건국후 1414년(태종 14)에 신창(新昌)과 병합하여 온창(溫昌)이라고 개칭하였다가 1416년에 나누어서 온수라 하고 현감을 두었으며 1442년(세종 24)에는 왕이 온천을 와서 온양군으로 승격시켰다.
1463년(세조 9) 왕이 보은 속리산으로부터 온양으로 행차하여 체류하던 중 왕이 산책하던 곳에 온수가 솟아나오니 ‘신정(神井)’이라고 칭하고 나라의 경사라 하여 전국에 널리 알렸다.
1476년(성종 7) 세조 행백기념(幸柏記念)으로 온천리에 신정비(神井碑)를 세웠다. 1895년 공주부 온양군으로 개편되었다가 1896년 충청남도 온양군이 되었다.
1914년 온양·아산·신창의 3개 군을 통합하여 아산군을 설치하였다. 1941년 10월 1일 아산군 온양면이 온양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7월 1일 탕정면 모종리·권곡리를 온양읍에 편입하였으며, 1983년 2월 15일 배방면 남리, 탕정면 신리, 신창면 점량리·득산리·실옥리를 온양읍에 편입하였고 1986년 1월 1일온양시로 승격하였다.
온양시는 1987년 1월 아산군 배방면 공수리 일부를 편입하였으며, 1989년 1월 실옥동 일부를 온천동으로, 실옥동에 아산군 염치면 석정리 일부를 편입하고, 신동을 염치면에 이속시켰다. 온양시는 1995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당시 6개 동, 인구는 약 2만 2000명으로, 아산군과 통합되어 아산시가 되었다. → 아산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