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취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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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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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온천을 중심으로 관광 및 휴양의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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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온천을 중심으로 관광 및 휴양의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취락.
개설

온천이나 광천이 있는 곳에서는 관광 및 휴양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이 구비되어 있어서 외부지역에서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따라서 온천이 분출하는 곳에는 호텔을 비롯한 숙박업소, 토산품 상점, 식당 등이 입지함으로써 하나의 취락이 형성된다. 온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취락은 점차 규모가 커져 천도(泉都)라고 불릴만큼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내용

예로부터 온천장에는 요양을 위하여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이들 내유객(來遊客)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하여 시설이 조성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경기, 전라를 제외한 6도에 온정(溫井)이 분포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온천취락은 오래전부터 전국적으로 산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온천취락으로 대표적인 곳은 온양·유성·수안보·동래 등지가 있으며, 이외에도 상당히 많은 온천취락이 형성되었다.

더욱이 동래온천은 달걀을 익힐 수 있을 만큼 뜨거워 병이 있는 사람이 목욕을 하면 곧 나을 뿐 아니라 신라 때에 왕이 와서 돌을 네 모퉁이에 쌓고 구리 기둥을 세워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분명히 물 온도가 높으므로 차가운 냉천(冷泉)과 구분되고, 간이 시설이라 하더라도 유숙자를 위하여 시설을 세웠으며, 신라 때부터는 지배 계층에 의하여 이용되어 왔음을 뜻한다.

온양에서는 조선 초기의 역대 임금인 태조·세종·세조 등이 이곳에 와서 요양을 하면서, 어실(御室)을 지었으므로 이는 온천을 이용하기 위해 상주 공간으로 탈바꿈한 실례이다. 그러나 근대적 시설을 갖춘 온천장으로 면모를 갖춘 것은 1920년대에 일본인에 의해서였다. 즉 경남철도(주)에서 온수를 끌어올리고 대중탕과 여관을 겸비한 신정관(神井館)을 세우면서부터이다.

이후 1925년에 일본인이 또 다른 온천 수맥을 개발하여 탕정관(湯井館)을 설치함으로써 최초의 대중탕 전용 시설이 마련되었다. 1961년에 신천탕(新泉湯)을 비롯하여 많은 양수시설을 우리의 힘으로 가동한 결과 현재 숙박 시설이 150여 개에 달한다. 이것은 보양 기능에 기초한 온천취락의 성립을 뜻한다. 이곳이 번영을 가져온 바탕에는 1960년대를 전후하여 기차를 이용한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은 것이 주효했으며, 2009년에는 수도권 전철이 온양 온천까지 개통됨으로써 다시 온천취락이 발전하고 있다.

한편 온천취락이 발달한 유성은 1933년의 통계에 의하면 3년간 평균 17.3만 명으로 온양과 동래를 앞섰다. 당시 유성에는 10개의 여관이 들어서 온천을 찾는 이용객을 상대로 숙식을 제공하였다. 광복 이후에도 편리한 교통 조건, 도시화의 물결 등 제반 사회조건이 온천취락의 기능을 발전시키면서 대전과의 도시 통합을 유도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호텔과 서비스업이 많은 유성은 대전광역시 유성구로 편입되었다.

이 외에도 수안보온천과 백암온천도 온천취락으로 각광받고 있다. 모두가 ‘따스한 우물’의 뜻을 담은 온정(溫井)의 이름이 붙여졌다. 전자는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데 1925년에 일본인이 53℃의 온천수를 끌어올리고 성광(星光) 여관을 세우면서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후 파크호텔을 비롯하여 30여 개의 숙박시설과 70여 개의 음식점이 들어서면서 명실상부한 관광취락의 면모를 갖추었다. 후자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백암산 아래에 위치한 데서 붙여졌다.

그러나 행정 지명에서 온정이고 옛 지명은 탕정목(湯沐井)으로 불리웠으므로 행정 지명과 옛 지명이 실질 환경에 부합된다. 성현(成峴)은 시에서 ‘뭉게 뭉게 안개 연기가 바위틈으로 터지는데, 한 줄기 샘물 푸른산 밑에서 끓어 오르네. 훈훈한 더운 기운 술에 취한 것 같고 가마솥에 가리와 섶으로 불 땔 일이 없네’라고 하였다. 이것은 분명히 연료를 때지 않고도 따스해진 물, 김이 서리고 훈훈한 온천의 장면을 묘사한 글귀이다.

이와 같이 온천은 ‘따스한 우물’에서 비롯되는 만큼 겨울철에 추운 북한에서 개발이 잘 진행되었다. 황해남도 송화군을 비롯하여 신천군·평산군·경성군의 주을읍 등은 대표적인 온천취락들이다. 그 중에서 이용객이 가장 많은 곳은 송화로서 가을철에만 2만명이 넘었다. 소재지의 지명이 온수(溫水)인 점을 감안할 때 ‘따스한 물’에 기초한 것이 온천취락이다. 낙산(樂山), 유옥(柳屋), 청송(靑松) 등은 일제강점기부터 이름난 숙박시설이다.

200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온천은 417개이며, 온천이용시설은 503개에 달한다. 10대 온천에 포함되는 곳은 충청남도에 4개(예산군 덕산온천, 아산시 온양온천, 아산시 아산온천, 아산시 도고온천), 충청북도(충주시 수안보온천)와 대전광역시(유성구 유성온천)에 각 1개, 부산광역시 2개(동래구 동래온천, 해운대구 해운대온천), 경상남도(창녕군 부곡온천)와 경상북도(경주시 보문온천)에 각 1개가 자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땅이름 나라얼굴』(오홍석, 고려원, 1995)
『한국의 농어촌과 환경 연구』(목지오홍석박사화갑기념논문집-2. 자필논문편, 목지오홍석박사화갑기념논문집간행위원회, 1995)
「국내 온천관광지 이미지 및 선호도 평가」(김시중, 『한국경제지리학회지』 13(2), 2010)
「한국온천관광지의 형성과정과 기능에 관한 연구」(김상훈, 경희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85)
「온천관광취락에 관한 연구」(김동희, 『교육논총』 창간호, 1981)
한국온천협회(www.hotspring,or.kr)
『朝鮮の聚落』(朝鮮總督府,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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