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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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궁궐 등을 조성하는 데 소용되는 기와 · 벽돌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한 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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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궁궐 등을 조성하는 데 소용되는 기와 · 벽돌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한 관서.
내용

종6품아문으로 한성부 남부의 용산 동쪽 둔지방(屯之坊 : 현재 용산구 용산동 4∼6가)에 있었다. 와장(瓦匠)이 만들되 역군(役軍)을 동원하였다.

관원은 겸직의 제조(提調) 1인과 전임의 종6품 별제(別提) 3인이 있었다. 여기에 소요되는 경비는 성종 때의 예를 보면 곡초(穀草) 450동(同)인데, 공안(貢案)에 기록되어 경기의 각 읍에서 수령들이 백성에게 대략 토지넓이에 따라 분정(分定)하였다.

태종 때에는 중 해선(海宣)의 요청으로 별와요(別瓦窯)가 생겨 한성부의 민가를 모두 기와로 하고자 하였는데, 이때 와장은 전국에서 40명이 동원되었고 승려들이 참여하였다. 뒤에 별서(別署)로 불린 별와요는 별제 2명이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구운 기와를 판매하는 일을 하였다. 1882년(고종 19)에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태종실록(太宗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대동지지(大東地志)』
『대전회통(大典會通)』
집필자
차용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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