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왕족으로, 1378년(우왕 4)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오르고, 1383년 밀직상의(密直商議)로서 김화·평강 등지에 침입한 왜구를 맞아 싸웠으나 패배하였다.
1389년(공양왕 1) 양광도절제사(楊廣道節制使)에 오르고, 그 이듬해 양광도에 침입한 왜구를 격파하였으며, 곧 청주절제사에 개수되었다. 1392년 정몽주(鄭夢周)가 이성계(李成桂) 일파에게 피살될 때에 그 당여로 몰려 원지로 유배되었다가 곧 방면되었다.
1392년(태조 1) 그간 태조의 휘하에서 노고가 많았다 하여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1394년에 동래현령 김가행(金可行) 등이 밀성(密城)의 맹인 이흥무(李興茂)에게 신국가의 안위와 공양왕의 복립 가부 등 왕씨의 운명을 점친 사건을 계기로, 한 조정의 왕씨일족 제거에 연관되면서 합포에 유배되었다가, 여러 왕씨와 함께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