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주민이 동검의 거푸집[용범(鎔范)] 3매를 발견, 신고함으로써 알려졌으나, 곧이어 실시된 국립박물관의 조사에서는 아무런 유구도 확인되지 않았다.
거푸집이 발견된 위치는 초부리 동편 구릉의 도로와 면한 서쪽 사면으로, 원래 거푸집은 두짝 4매였을 것이나, 1매는 유실되고 3매만 수습되었다.
3점의 청동검 거푸집은 모두 활석으로 만들었으며, 그 중 2매는 서로 짝을 이루고, 그 뒷면에도 틀을 갖추고 있어 여기에 다른 용범을 붙여 사용하면 한꺼번에 여러 개의 청동검을 생산할 수 있는 구조이다. 나머지 하나는 짝이 없는 상태로 출토되었는데, 그 뒷면에 틀을 새기지 않아 단독 용범이거나 중복 용범 중 마지막 바깥쪽 거푸집일 가능성이 있다.
거푸집의 크기를 보면, 짝을 이루는 것은 길이 25.3㎝, 폭 5.4㎝로 2개가 동일하지만 두께는 각각 2.5㎝, 2.3㎝으로 약간 차이가 있다. 짝이 없는 1점은 길이 28㎝, 폭 6.2㎝, 두께 1.6㎝으로 짝이 있는 것보다 약간 큰 편이다.
경부의 단면은 원형을 이루며, 등날로 이어져 검의 끝까지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검신부에는 1개의 돌기가 보이지만 매우 약하게 남아 있고, 기부는 수평으로 곧으며 검신부의 날은 약간 불룩하였다가 돌기 쪽으로 가면서 부드럽게 만입한다.
이 거푸집으로 생산하는 동검의 형태는 비파형동검에서 세형동검으로 변화하는 형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이러한 중간적 형태의 동검은 안신원에 의해 요녕식 동검 변형Ⅱ식으로 분류되는 것으로, 유사한 형태로는 금릉 송죽리출토품과 개성시 진봉리출토품이 있다.
거푸집이 출토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초부리의 남구만(南九萬, 1629∼1711) 묘소 주변 능선 일대에서, 청동기시대 생산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곳에 대한 정밀한 학술 조사가 이루어질 때까지 거푸집 출토지의 현상을 보존하고 지형이 변형되지 않도록 조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