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고려 전기의 동종으로서는 드물게 보는 거종이며 신라 동종의 양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동종의 정상에는 용뉴(龍鈕)와 용통(甬筒)을 갖추었고, 특히 용통은 세잔한 연주문(聯珠文)으로 돌려서 6단으로 구분하고 당초문(唐草文)과 연판(蓮瓣)으로 장식하였는데, 연판은 원형, 반원형, 타원형 등 여러 형태이다. 종정(鐘頂)의 천판(天板)에는 문양이 없으며 상대(上臺)와 하대(下臺)의 문양은 서로 다른 형태의 문양대로 장식하였다.
다만 동일한 것은 상대·하대 유곽(乳廓)·당좌(撞座) 등의 내외 둘레만 세잔한 연주문대로 하였고 그 내부에 화려한 문양대로 장식한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상대의 문양은 반원권(半圓圈) 문양을 상하 엇갈려서 장식하고 그 사이사이에 당초문으로 장식하였으며, 하대의 문양은 상대와 달리 연속되는 당초문으로 장식한 것이 다르다. 특히, 하대의 당초문에 있어서 당초가 한번 선곡(旋曲)하는 중앙에 8판 혹은 9판의 연화문을 독립시켜 배치한 것이 이색적이다.
유곽 역시 연주문대 내에 당초문으로 장식하였고, 유두(乳頭)는 원형의 연판좌 위에 돌기된 9개의 유두를 가지고 있다. 4개소의 유곽 밑으로 원형의 당좌를 배치하고 있는데, 연화를 주문양으로 하고 그 둘레에 연주문대를 돌리고 다시 당초문으로 돌린 다음 또다시 연주문대로 조식하였다. 종신(鐘身)에는 천의를 날리며 승천하는 비천상(飛天像)과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채 두광을 갖추고 합장하여 승천하는 3존상을 교대로 배치한 특수한 양식이다.
원래 이 동종은 무명종(無銘鐘)이었으나, 후각한 명문이 있어 이에 따라 854년(문성왕 16)에 주조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이는 동종의 형태와 일치하지 않는다. 종신의 1개소에는 32자의 명문이 각명(刻銘)되어 있고, 또 1개소에는 55자의 명문이 각명되어 있다. 또한 이 동종은 신라 동종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고려 전기의 종으로, 반원권 문양을 상대에 장식하고 있는 점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