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추사 사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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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문헌
조선후기 승려 촌혜가 용추사의 부속암자인 용추암에 관한 내력을 정리하여 1736년에 기록한 사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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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승려 촌혜가 용추사의 부속암자인 용추암에 관한 내력을 정리하여 1736년에 기록한 사적기.
내용

1책 1권. 필사본(전체 6장).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덕유산 장수사(長水寺 : 지금의 龍湫寺)에 딸려 있는 용추암에 대한 창건과 중수의 기록이다. 권수에 ‘안음장수사여용추암창수원류흥폐록(安陰長水寺與龍湫菴創修源流興廢錄)’이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 의하면 용추사는 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사이에 창건되었는데, 원래는 선종(禪宗)의 사찰이었다고 한다. 여말에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은거하여 수도하던 곳이며, 숙종 때 불타버린 것을 문찬(文贊)이 이영생(李英生)·김상운(金尙雲) 등의 도움을 얻어 복원하였는데, 법당과 누각 등이 새로 세워졌다.

그것을 기념하여 『화엄경(華嚴經)』·『법화경(法華經)』 등을 이 절에서 인간(印刊)하였고, 대법회를 열어 중흥의 기틀을 다졌다고 한다.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에도 원문이 기재되어 있다. 같은 해 편찬된 「용추사편액창수원류흥폐부안록(龍湫寺扁額創修源流興廢符案錄)」이 함께 전한다. 동국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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