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箕子)의 후손인 준왕(準王)이 위만(衛滿)에게 쫓겨 마한으로 가서 한왕(韓王)이 되었다.
그 후손인 마한 원왕(元王)에게 3형제가 있었는데 나라가 망하매 아들 우평(友平)은 고구려로 가서 유리왕을 섬겨 벼슬하여 북원(北原) 선우씨(鮮于氏)의 시조가 되고, 우성은 백제에 항복하여 온조왕을 섬겨 덕양기씨의 시조가 되었고, 우량(友諒)은 신라로 가서 탈해왕조에 벼슬하여 상당한씨(上黨韓氏)의 시조가 되었다 한다.
일설에는 기자가 조선에 봉해지고 기자의 작은아들 중(仲)이 우산국(于山國)에 봉해졌는데, 작은아들이 조선의 ‘선(鮮)’자와 우산의 ‘우(于)’자를 따서 선우라 이름하여 선우씨의 시조가 되었고, 기준왕이 마한으로 망명하여 한왕이 되매 기준의 아들 우친(友親)이 조선에 남아서 한씨의 시조가 되었다 한다.
또한 일설에는 마한의 말(末)에 기자의 후손 3인이 있어 친(親)은 그 뒤에 한씨의 시조가 되고, 평(平)은 기씨의 시조가 되고, 양(諒)은 용강(龍岡) 오석산(烏石山)에 들어가서 황룡국(黃龍國)을 세워 왕이 되어 선우씨의 시조가 되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