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대초 정계는 개화당과 사대당으로 나누어져, 전자는 일본의 제도를 본받아 개혁정치를 하려 하였으나, 후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개화당의 홍영식(洪英植)ㆍ김옥균(金玉均)ㆍ박영효(朴泳孝) 등은 정변을 일으켜 사대당인물들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여 정치개혁을 실시하려고 하였다. 거사는 우정국개국축하연이 열리는 1884년 음력 10월 17일(양력 12월 4일)로 정하고, 개국축하연을 이용하여 사대당인물을 처치하고 왕을 잠시 경우궁(景祐宮)으로 옮기며, 별궁에 불을 질러 거사의 신호를 삼기로 하였다.
거사 당일인 10월 17일 저녁 7시 우정국개국축하만찬회가 우정국청사에서 열렸다. 여기에는 우정국 총판(總辦) 홍영식, 박영효, 독판(督辦) 김홍집(金弘集), 전영사(前營使) 한규직(韓圭稷), 우영사(右營使) 민영익(閔泳翊) 등 개화당과 사대당 인물들, 그리고 주한외교사절들이 참석하였다.
경비가 심하여 안국동 별궁에 대한 방화는 계획대로 시행하지 못하였으나, 대신 10시경 우정국 북쪽에 있는 민가를 방화함으로써 거사에 돌입하였다.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밖으로 나갔던 3영사 중 민영익이 개화당 행동대의 칼에 맞아 중상을 입고 우정국 내에 들어와 바닥에 쓰러졌다.
그 뒤 수라장이 된 연회장을 빠져나간 김옥균ㆍ박영효ㆍ서광범(徐光範) 등 개화당 인물들은 일본공사관에 들렀다가, 곧바로 창덕궁에 들어가서 계획대로 국왕을 경우궁으로 모셔가 정권을 장악, 다음날인 18일 새 정부의 구성을, 19일에는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