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왕조교체기의 역사를 시로 다루었으므로 ‘시사(詩史)’라고 하였고, ‘운곡행록(耘谷行錄)’이라고도 한다.
작자는 고려 말에도 벼슬을 하지 않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선 다음에는 깊이 은거하면서 스스로 겪은 역사의 내막에 대한 증언을 남기고자 하여 이 시집을 지었다. 원래는 더 많은 분량이었을 듯한데, 후손이 간행하여 남은 것만 보아도 방대하다.
고려 충정왕 3년(1351)에서 조선 태조 3년(1394)까지 44년 동안 있었던 일과 거기에 대한 자기의 소감을 1,000수가 넘는 시로 다루었다. 형식은 다양하고, 서(序)가 붙은 것도 있다. 우왕과 창왕이 신돈(辛旽)의 혈통을 이었다고 수난을 당한 것이 부당하다고 하였으며, 최영(崔瑩)의 죽음을 애통하게 여긴 작품도 있다.
이런 점에서 조선왕조 성립의 명분을 비판하였으니, 내용이 온전하게 전하여지지 못하였다는 말이 타당한 것 같다. <대민음 代民吟>에서는 백성의 어려운 처지를 다루었으며, 작자 자신이 곤궁하게 되어서 고민하는 자취도 나타냈다.
<회삼귀일 會三歸一>이라는 시에서는 유(儒)·도(道)·불(佛)의 삼교가 본래 다를 바 없는데 다투어서 무얼 하겠느냐면서, 신유학에 입각한 질서만 강조하는 시책에 반발하였다. 왕조교체기의 반주류적인 문학의 양상을 잘 나타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