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개척 당시의 생활상과 풍물을 소재로 하였으며, 간결한 문체와 정연한 형식을 갖춘 비교적 짧은 작품이다. 「정처사술회가(鄭處士述懷歌)」와 함께 울릉도 개척기의 정황을 표현한 희귀한 작품이다. 4음보 1구로 계산하여 총 43구이며, 3·4조와 4·4조로 되어 있다.
내용은 청일전쟁과 동학운동이 일어나 세상이 혼란해지자 고향을 떠나 신개척지인 울릉도에 입도하는 작자의 심정과 항해과정, 개척자로서의 꿋꿋한 자세, 겨울과 봄을 지내는 개척민들의 어려운 생활, 일본인과의 물물교환, 뛰어난 자연풍물과 개척민들의 상부상조, 학문숭상과 후한 인심을 가진 울릉도 거주민들의 모습이 선경(仙境)과 같다는 작자의 느낌 속에 육지에 두고 온 부모형제에 대한 그리움 등을 간결하나마 치밀하고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비록 근세에 지어졌으나 섬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 드문 가사문학에서 우리 나라 3대도서의 하나인 울릉도를 소재로 지은 작품이라는 데 가치가 있다. 이 작품은 울릉도 개척령(1878)이 있은 뒤 울릉도 중개척기에 해당하는 1894년에 작자가 입도하여 두 아들을 낳자 그 기쁨에서 막내 아들이 태어난 직후 지은 것이다.
작자의 큰 아들 순진(淳鎭)의 집인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에서 발굴된 것으로, 발굴 당시 작품의 제명(題名)이 없는 것을 발굴자인 서원섭(徐元燮)이 이름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