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골 출신으로 703년 7월에 집사성 중시 원훈(元訓)이 물러남에 따라 원문이 아찬(阿飡)의 관등으로서 임명되었다. 성덕왕 때에는 중시가 자주 바뀌었다. 아찬 원훈이 성덕왕의 즉위 직후인 원년 9월에 임명되었으나 1년도 못 되어 이듬해 7월에 원문이 중시가 되었다.
그리고 중시는 대개 대아찬 이상의 관등을 가진 자가 임명되었으나, 성덕왕대에는 원훈·원문, 다음의 신정(信貞) 등이 거듭 아찬의 관등으로 임명된 것이 주목된다. 705년 정월에 죽을 때까지 1년 6개월간 재직하였다.
한편, 『삼국유사(三國遺事)』 왕력 성덕왕조의 “처음 비(妃)는 배소왕후(陪昭王后)로 시호는 엄정(嚴貞)이며 원대(元大) 아간(阿干)의 딸이다.”라는 기록에서 원대는 원문과 같은 사람으로 보아, 원문을 성덕왕의 장인으로 추정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