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원주(原州)이다. 삼한공신(三韓功臣) 원극유(元克猷)의 9대손이며, 아버지는 원진(元瑨)이다.
1241(고종 28) 4월 과거에 급제하여 직사관(直史館)에 보직되고, 1269년(원종 10) 12월 추밀원부사가 되어 그 해 원종이 원에 조회하러 갈 때 배행(陪行)하였다.
1273년 1월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가 되었으며, 1275년(충렬 1) 원 조정의 뜻에 따라 관직의 명칭을 고치게 되자 광정대부(匡靖大夫) 첨의시랑찬성사(僉議侍郞贊成事) 판군부사사(判軍簿司事) 세자부(世子傅)가 되었다. 1277년 5월 수국사(修國史)가 되어 감수국사 유경(柳璥)·수국사 김구(金坵) 등과 함께 『고종실록(高宗實錄)』 찬수의 명을 받았다.
1278년 4월 왕과 공주가 원나라에 행차하는 데 따라갔고, 이듬해 3월 아들 정(貞)을 뚤루게[禿魯花]로 보냈으며, 1284년 감수국사(監修國史)로서 수국사 허공(許珙)과 함께 『고금록(古今錄)』을 편찬하였다. 1285년 2월 첨의중찬(僉議中贊)으로 치사(致仕)하였으며, 1285년 2월 홍도정리(紅桃井里)의 집에서 죽었다. 그는 1272(원종 13) 9월과 1280년(충렬 6) 4월 과거를 주관한 바 있다. 시호는 문순(文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