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무송(茂松). 아버지는 좌찬성 유당(庾鐺)이다.
음보로 관직에 나온 뒤 1402년(태종 2) 판내자시사(判內資寺事)로 의주에 파견되었다. 요동군마(遼東軍馬)의 도산(逃散) 사태를 살피고, 그 뒤 안변도호부사를 역임하였다.
1406년 공조참의로 제주안무진제사(濟州按撫賑濟使)가 되어 기민을 구제하였다. 이 해 평안도 안주성 축조를 독려하고자 첨총제(僉摠制)·선위사(宣慰使)로 임명되었으나, 어머니의 상이 끝나지 않아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었다.
1408년 판원주목사(判原州牧事)로 재임할 때 명나라에 처녀를 바치기 위해 내린 혼인금지령을 어기고 자녀를 혼인시킨 죄로 순금사(巡禁司)에 하옥, 직첩이 박탈되고 원방으로 부처(付處)되었다. 1457년(세조 3) 금성대군 이유(錦城大君 李瑜)와 함께 단종 복위 모의에 관련된 혐의로 사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