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중구(仲久). 판서 유계문(柳季聞)의 8대손이며, 아버지는 현감 유운(柳霣)이다.
1677년(숙종 3) 진사시에 합격하고, 1680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좌랑을 거친 뒤 부사에 이르렀다.
평생 경사(經史)를 두루 섭렵하고 학문에 몰두하였다. 청렴강직함이 남보다 뛰어나 말단 지위에 있을 때에도 뇌물을 들고 고관대작의 집에 출입하는 것을 남부끄럽게 여겼다. 이를 들은 같은 종중의 재상인 유상운(柳尙運)이 한 번 만나기를 청하자 거부하다가, 유상운이 아들을 보내 다시 청하자 만나서는 사의를 표하였다.
4읍의 수령을 역임할 때 한결같이 사사로움을 버리고 공적인 자세로 임하여 치적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