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자성(子盛), 호는 서호산인(西湖山人). 아버지는 참판 유해(兪解)이다.
무과에 급제한 뒤 1496년(연산군 2) 만포진첨절제사(滿浦鎭僉節制使)가 되고, 뒤에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1504년 좌의정 성준(成俊)이 왕의 난정(亂政)을 극간하다가 교살될 때 그 일당으로 몰려 유배되었으며, 그 뒤로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석방되어 병조참지에 임명되었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不事二君]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비인현(庇仁縣)에 은거하면서 사냥으로 나날을 지냈다. 성품이 청렴결백하고 근엄하며, 9개 군(郡)의 수령을 역임할 때 명성과 공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