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승수(承叟). 호는 회은(晦隱). 경상북도 안동 출신. 세자시강원부수(世子侍講院副率) 진휘(進徽)의 아들이다.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숨은 일화도 많이 남겼다.
중년에 여러 번 이사를 하였는데, 마침내 군위군 비안의 덕암리에 이사하자 스스로 회은이라 하고 농사를 지었다. 그러던 중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안동의 옛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다가 9월에 전폐(殿牌)를 헐어버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조상의 묘를 배별하고 여러 친척들을 비롯하여 자손·친지들에게 작별을 알린 뒤, 집에 돌아와 마당에 자리를 마련하고 북쪽을 향하여 네 번 절한 다음 음식을 전혀 먹지 않고 자결하였다.
단식을 시작하여 죽을 때까지 자지(自誌)·자명(自銘) 등 여러 편의 시를 지었다. 1951년 안동유지들이 사회장을 지내고 화산(花山)에 이장하였으며, 진안의 이산묘(餌山廟)에 모셨다.
1962년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