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숙문(叔文), 호는 노애(蘆厓). 경상북도 안동 출생. 참의 유관현(柳觀鉉)의 아들이다. 참의 유승현(柳升鉉)에게 입양되었다. 동생인 유장원(柳長源)과 함께 이상정(李象靖)의 문인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네살 때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을 뿐더러 동생 장원과의 우애가 또한 돈독하였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더 이상 과거 볼 것을 단념하고, 존심(存心)·함양(涵養)의 실천적 수행으로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전념하였다.
성격이 매우 청백하여 평소 남들과 함부로 어울리기를 꺼려하였다고 한다. 생활이 매우 규범적이어서 「십계(十戒)」·「삼잠(三箴)」 등의 경구를 벽에 써붙여 놓고 항상 애송하며 마음을 닦는 데 주력하였다.
학행이 널리 알려져 도천(道薦)으로 명릉참봉(明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한 지 3일 만에 병을 칭탁하고 사직, 고향에 돌아가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1790년(정조 14) 노인직으로 첨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주석학(注釋學)에 밝았다고 하며 많은 저술을 남겼다.
저서로는 문집인 『노애집(蘆厓集)』을 비롯하여 『퇴계선생문집고증(退溪先生文集攷證)』·『일경록(日警錄)』 등이 있다.